"다녀왔습니다~"
달칵, 키세는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부터 큰소리로 인사를 한다. 어서 와요, 키세군. 하며 저를 반겨주는 사랑스러운 애인, 쿠로코가 있기 때문이었다. 아아, 야간 비행은 너무 힘이 듬다. 키세는 칭얼거리는 소리를 내며 제 가방을 받아주는 쿠로코 어깨에 털썩 얼굴을 묻고 흰 목덜미에 뺨을 부비작거렸다. 방금 목욕을 끝냈는지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를 간지럽히고, 코가 맞닿은 피부에서는 보송보송한 살내가 훅 끼쳐왔다. 살풋 웃는 쿠로코가 느껴지고 제 허리를 끌어안아오는 팔도 느껴진다. 집에 왔구나. 키세는 나른하게 눈을 감으며 어깨에 얼굴을 더욱 깊이 묻고선 장시간의 비행에 긴장으로 지쳐있던 몸을 기댔다.
*
얼마 간의 해후가 끝나고 뜨거운 물에 피로 좀 풀라는 쿠로코의 말에 키세는 얌전하게 물에 뜨끈하게 몸을 담그고 나왔다. 수건으로 머리를 대충 탈탈 터는 키세에게서 모락모락 김이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던 쿠로코가 보고 있던 책을 덮고는 키세에게로 다가왔다.
"빨리 머리를 말리지 않으면 감기에 걸릴 겁니다, 키세군."
"에에, 나는 건강하니 괜찮슴다!"
"키세군."
"아, 정말~ 그럼 쿠로콧치가 말려주세요."
"그러죠. 말 안 듣는 어린이 키세군."
으응...?! 쿠로코가 승낙할 줄 몰랐던 키세가 어안이 벙벙해져있는 사이 쿠로코가 잽싸게 키세의 손에 들린 수건을 가져가며 킥킥 웃었다. 키세는 여전히 무슨 일이 일어났나,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 사이 쿠로코가 소파에 앉아 바닥을 발로 콩콩 두드렸다.
"안 올 겁니까."
"...?"
"모처럼의 기회라구요?"
"아, 아. 응...!"
그제서야 사태파악이 된 키세는 후다닥 쿠로코의 다리 사이에 마주 보고 앉았다. 얼굴과 귀가 새빨개진채로. 이 사람은 이렇게 가끔씩 사람을 들었다 놓았다 할 때가 있어.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은 채로 눈만 굴려 시선을 올리니, 편안하게 눈을 내리깐 채 수건으로 제 머리칼을 감싸는 쿠로코가 보였다. 덩달아 아래로 내려간 속눈썹이 길게 말려올라간 것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있는 것도 보인다. 예쁘다... 키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열려있는 베란다에서 미적지근한 여름바람이 불어와 둘의 머리카락을 장난치듯 간간히 흔들고 지나간다. 거실에는 키세와 쿠로코의 호흡과, 쿠로코가 키세의 머리카락을 토닥토닥 두드리는 소리만 울렸다. 문득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키세는 쿠로코를 눈에 담다 말고 팔을 뻗어 눈앞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키세군?"
자신과 같은 향기. 사실 아직도 쿠로코가 자신과 같은 집에서, 같은 샴푸를 쓰고. 사랑을 속삭이고, 몸을 맞댄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어쩌면 자기가 너무 좋아해서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몇년 전 얼떨결에다가 엉망진창이었던 제 고백에, 키세군답네요. 하며 왈칵 울음을 터뜨렸던 쿠로코가 - 나중에 듣고 보니 너무 좋아서, 라고 대답해 혼자만 애태우게 했다고 잔뜩 칭얼거렸지만 - 아직도 생생해 그런 생각은 금방 지워졌다. 그래도 품 안의 체온과 감각에 뭉클해진 키세는 쿠로코의 배에 얼굴을 묻고 부비작거렸다.
"그 때 쿠로콧치, 진짜 귀여웠는데."
"언제, 말입니까?"
"내가 고백했을 때요."
"... 그 때 이야기는 하지 말죠."
"에에, 쿠로콧치. 울었던 거 부끄러워하는 거죠, 지금?"
"네가 너무 늦게 고백하니까 그런 거 아닙니까."
쿠로코가 위에서 볼멘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럼에도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손길은 여전히 애정이 가득하고, 다정하다. 응응, 맞아요. 내가 다 잘못했어. 고개를 끄덕이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니 바디샴푸의 후르츠향과 같이 미미하게 쿠로코의 체향이 느껴진다. 아까 그렇게나 봤는데도 쿠로코가 보고 싶어졌다. 분명 놀림에 얼굴을 발갛게 익히고 있겠지. 억울하다는 듯 보고 있을 거야. 무척 사랑스러울 거야.
키세는 참지 못하고 배에 닿아있던 얼굴을 들어올렸다.
아, 역시.
뺨과 눈가를 붉힌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쿠로코가 보인다. 파아란 눈동자에는 자신이 담겨있다. 애인. 내 사랑. 내 사람. 마음 깊숙한곳에서부터 쿠로코를 향한 진득한 애정이 목을 치고 올라왔다. 키세는 팔을 뻗어 쿠로코의 얼굴을 끌어당겼다. 의아한 듯한 표정의 쿠로코가 닿을 듯 말 듯 바로 앞에 있었다.
"쿠로콧치."
"네, 키세군."
"쿠로콧치..."
"네."
"... 나랑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
"이렇게 어리광만 부리는데. 믿고 따라와줘서 고마워요."
눈이 많이 내리던 겨울날. 고민으로 서성이다 얼어붙은 입으로 어눌하게 했던 고백. 그리고 내밀었던 차가워진 손. 잡아줘서 참으로 고맙고 또 고맙다고. 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전해질 거라고 믿으며 키세는 이마를 콩 맞대고 눈을 휘어 달콤하게 웃었다. 앞으로 더 사랑할게요. 그러자 쿠로코가 양 손으로 키세의 뺨을 감싸며 입술을 마주대 왔다. 놀란 키세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몇 초가 지났을까, 입술이 떨어졌다. 깃털처럼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쿠,쿠,쿠,쿠로콧치?!"
놀란 키세가 화악 얼굴을 붉히며 말을 더듬자 쿠로코가 아까 키세가 했듯 이마를 콩, 맞대어왔다.
"이렇게 표현도 못하는 절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어리광부리는 사람이 키세군이라 행복합니다."
"쿠로콧치..."
"많이 좋아합니다. 보고 싶었어요."
이번 비행은 너무 길었습니다, 하며 해사하게 웃는 쿠로코를 키세는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단 채로 바라보았다. 쿠로코가 견딜 수 없이 사랑스러웠다. 품에 있는데도 안고 싶었다. 키세는 한 손으로 쿠로코의 머리를 끌어당기고 정신없이 제 입술을 부딪쳤다. 기다렸다는 듯 열려오는 입술에 다른 손으로는 쿠로코의 허리를 강하게 끌어안고는 얼굴을 틀어 더 깊게 입술을 부볐다.
나도. 나도 보고 싶었어요.
차마 입술 새로 새나가지 못한 말이 둘사이를 한참이나 맴돌다가 흩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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