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왜 찾았는데요?”
“...”
“또 대답 안 하네. 왜 나를 찾았냐고요. 응?”
묻는 소년의 눈동자가 언뜻 보기에는 호기심으로 번뜩이는 듯 했지만 쿠로코는 그 안의 이질적인 감정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정확히 무엇인지까지는 몰랐지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쿠로코는 열리지 않는 입술을 겨우 열었다.
“키세군이, 제 수업에 결석을 계속 해서요. 자세한 상황을 알아야겠다 싶었습니다.”
단 두 문장을 뱉는데도 목소리가 떨렸다. 선생인 자신이 학생에게 답을 하는 것뿐인데도 왜 이렇게 동요하는 건지 쿠로코는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아 시선을 피하며 혼란스러운 머리를 어떻게든 정리하려고 탁자 끝만 노려보았다.
“아, 정말 타이밍 좋게 촬영이 있었어요. 못 믿겠음 매니저라도 전화 바꿔줄까요?”
키세가 넉살좋게 웃으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가볍게 흔들었다. 쿠로코는 쳐다도 보지 않고 눈을 감았다.
“아니요, 그런 거라면 됐습니다.”
“그게 다예요?”
“답니다.”
흐응, 재미없네. 키세가 시큰둥하게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키는 기척이 느껴지자 쿠로코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생각하려면 일단 눈앞의 저 화려한 얼굴이 없어야했다. 저도 모르게 자꾸 눈이 가서 보고 있게 되거나 찬란함에 얼굴이 붉어진다. 처음 보는데도 사람을 끄는 마성이 있는 미모였다. 쿠로코는 키세가 마저 일어나길 기다리며 아찔해질만큼 복잡한 머릿속을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어째 몸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걷히질 않았다. 의아스러움에 쿠로코가 슬쩍 키세에게로 시선을 올린 순간 쿠로코는 흥미있는 걸 발견한 듯 휘어져있는 눈과 마주쳤다.
“저기, 선생님. 나 지금 되게 재밌는 걸 알았는데.”
“... 어떤 거요?”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내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거.”
쿠로코는 말을 듣자마자 입술을 꾹 깨물었다. 평소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살았는데 눈앞의 소년은 예민하게 자신의 변화를 잘도 알아냈다. 어쩌면 자신이 생경한 감정에 숨기는 게 어설펐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키세가 타인의 감정 변화를 민감하게 잘 알아채는 걸지도 몰랐다. 어찌됐건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키세가 자신이 지금 불안정한 상태임을 꿰뚫어봤다는 거다.
선생님, 그거 알아요? 지금 맹수 앞에서 벌벌 떠는 아기 토끼같아. 왜 그렇게 떠는 거예요? 느릿하게 고개를 숙인 키세가 쿠로코의 귓가에 속삭였다. 은근한 입김이 귓볼에 닿는 게 느껴졌다. 키세의 팔은 쿠로코의 양 옆에 몸을 가두듯 테이블을 짚고 있었다. 쿠로코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눈동자만 굴렸다. 머릿속이 도화지처럼 새하얗게 변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연신 눈만 깜박이며 밤색 넥타이만 노려보고 있는 와중 쿠로로의 몸이 휘청하며 강한 힘에 이끌려 일으켜졌다. 드르륵, 의자가 거칠게 뒤로 밀려나는 소리가 적막한 도서관에 울렸다. 어느새 제 허리에는 키세의 팔이 감겨있었다. 쿠로코의 눈이 크게 떠져 키세를 담았다.
“사실 나 부른 거, 그게 끝 아니죠?”
“... 끝입니다만.”
“에이. 입으론 날 속여도 눈으로는 못 속여. 날 원하듯 바라보고 있었잖아. 다 알아요.”
“...?”
“모든 선생님들이 그래. 보충해주겠다, 상담 좀 하자, 하는 핑계를 대면서 나랑 둘만 있을 시간을 만들려고 안달이거든요. 보통은 여자 선생들이지만 가끔 남자 선생도 있었어요. 쿠로코 선생님도 그런 거 아닌가?”
키세가 나른하게 웃으면서 한숨을 쉬듯 말을 뱉었다. 상대를 안쓰럽게 여기는 듯한 웃음도 함께. 쿠로코는 키세가 무슨 말을 하는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핑계? 둘만의? 남자?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멍해진 머리로 단어들을 조합하고 있을 때였다. 키세가 감은 팔에 힘을 주어 몸을 당겨 안으며 쿠로코와의 거리를 좁히고 얼굴을 더 가까이 했다.
“뭐... 보통 때였으면 비아냥거리고 쫓아냈겠지만. 쿠로코 선생님은 마음에 들어요. 얼굴도 괜찮고 눈은 좀 예뻐. 체구도 안기엔 좋을 것 같고. 무엇보다 이렇게 덜덜 떨면서도 용기를 낸 게 가상해.”
잘했다고 칭찬 해줘야하나? 그렇게 말하며 생긋 웃는 키세의 얼굴은 여전히 눈부시고 아름다웠다. 쳐다보는 시선에선 꿀이 떨어질 듯 황홀하고 달콤했다. 눈가와 뺨을 쓸어내리는 손길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키세의 손이 엉덩이 부근까지 내려와 바지 위로 살을 한 움큼 꽉 잡자마자 쿠로코는 확 정신이 들었다. 어쩔 줄 모르던 두 팔을 뻗어 키세를 세게 밀쳐냈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키세는 쉽게 뒤로 물러나주었다.
“밀쳐서 미안합니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어요.”
동요하던 시선은 온데간데없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달아올랐던 귓가와 뺨도 원래의 체온대로 돌아왔다. 쿠로코는 구겨진 옷을 툭툭 쳐 펴면서 키세의 팔이 닿았던 부분은 보란 듯이 세게 털어냈다.
“호오.”
키세는 재미있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우지 않고는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눈에 보이게 덜덜 떨던 아까와는 달리 이렇게 페이스를 찾아 금방 감정을 숨기고 침착해진 모습이 새로운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쿠로코 선생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을 잘 모르겠다는 소문대로였다. 나이답지 않게 신비로운 느낌이 있다며 같은 반 여학생들이 가끔 얘기하는 걸 키세도 들은 적이 있었다.
“아까는 제가 생각해도 좀 얼이 빠졌었네요. 다시 한 번 사과합니다. 바보 같은 모습을 보였어요.”
“아니에요. 이해해요. 날 본 사람들은 전부 그런 반응이거든. 내가 너무 눈부신 걸 어쩌겠어요.”
키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쿠로코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확실히 여학생들이 많이 따를 만하네요. 저도 살면서 키세군 같은 미모는 처음 보니까요. 한순간 혹했습니다.”
“그래요? 영광이네요. 감정 없기로 유명한 쿠로코 선생님이 나한테 반할 줄이야.”
“감정이 없진 않습니다. 반한 것도 틀린 건 아니지만 일단 지금 좀 분하거든요.”
“분해요? 내가 선생님한테 그런 짓해서? 미안해요. 사과할게. 하지만 나는 그런 의미인 줄 알았는걸. 흐흥. 그나저나, 나한테 반한 거 맞으면 아까 하던 거 마저 할래요? 나 선생님 꽤나 마음에 드는-”
“아니요, 정중하게 거절합니다. 그런 짓하는 키세군한테 짧게나마 반했다고 생각한 제가 멍청해서 화가 나네요.”
“... 하?”
“키세군이 남을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학생 취급도 안 했을 겁니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네요. 얼굴이 예쁘면 뭐합니까, 행동이 최악인데.”
“뭐?”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저는 단순히 키세군이 왜 수업에 나오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물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키세군에게 은근슬쩍 다가갔다는 그런 사람들과 비교하지 마세요. 기분 나쁩니다. 다음 수업시간에 보던지 말던지 하죠. 그럼 이만.”
말을 마친 쿠로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책을 챙겨 도서관을 나섰다. 잘 숨긴 듯 했지만 도서관을 나오자마자 책을 쥐고 있는 손과 바삐 걸어가는 다리가 덜덜 떨렸다. 하지만 휘청휘청 걸으면서도 한참 전의 저같이 얼빠진 표정의 키세가 잊혀지질 않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반한 걸지도 모르겠다. 아까부터 떨고있던 몸과 키세의 생각을 하자마자 다시 떨려오는 심장을 추스르며 쿠로코는 발을 재게 놀렸다.
한편 키세는 쿠로코가 나가고 나서도 멍했다. 한 번도 면전에서 그딴 험한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려 쫓아가려고 따라 나왔지만 벌써 쿠로코의 모습은 복도 끝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키세는 괜히 분한 마음에 손으로 제 머리를 헝크렸다. 꾹 다문 잇새 사이로 꾹꾹 누른 듯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쿠로코... 테츠야. 당하지고 있지만은 않겠어.”
키세가 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도서관의 침묵을 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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