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하다, 고 생각했다.
나른한 듯 보여도 매서운 눈매와 그 안의 붉은 눈동자. 미묘하게 다른 색깔인 두 눈동자가. 그리고 잔뜩 가시가 서있는 것 같이 날카로운 시선과는 달리 얇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다정한 목소리가.
졸업을 하고 나면 보지 못 할 줄 알았다. 일단 서로 진학하는 학교가 너무 멀었고, 또 무엇보다 쿠로코 자신이 더 이상 아카시를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런 거라 생각했다. 동경하는 마음을 담고 눈으로 좇던 아카시에게 연모의 감정이 섞여들어가던 그 어느 순간부터 쿠로코는 아카시에게 이 작은 마음이 들킬까 두려웠다. 타오르는 색과는 달리 냉정한 눈동자가 자신을 경멸하는 게 싫었다. 그래서 시선을 애써 돌렸다. 서로가 읽던 책에 관해 간간히 나누던 대화는 물론, 필요 이상으로는 말도 섞지 않았다.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그렇게 꼭꼭 숨긴 애정이었다.
그래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을 때 처음에는 거절하려 했다. 눈에서 멀어지며 식은 줄 알았던 감정이 메일 상단의 이름을 보자마자 요동치는 것이 느껴져서 무의식 중에 튀어나올까봐 겁이 났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마냥 멋져보였던 모습이 지금은 얼마나 더 활짝 피었을지 보고 싶었다. 예전과는 다른 게 있을지도 몰랐다. 마지막,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야. 욕심이 샘솟았다. 알겠다고 자판을 누르는 손가락이 덜덜 떨렸다. 그렇게 불안과 기대의 시간이 흐르고, 지금이 왔다.
"오랜만이야, 테츠야."
"오랜만입니다, 아카시군."
웃으며 인사하는 상대는 이제 이름으로 자신을 불렀다.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아니기도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가 자신을 쿠로코라고 불러주든, 테츠야라고 불러주든 상관 없이 심장이 떨린다는 사실이었다. 혹여나 목소리도 떨리는 건 아닐까 쿠로코는 손에 꾸욱 힘을 주었다.
"도쿄에 아카시군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아아,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말이야."
"그렇습니까. 아카시군 쪽에서 먼저 만나자고 연락하다니 의외입니다."
"그래? 나는 늘 테츠야 너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슬쩍 눈을 내리깔고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차를 마시다 흘리는 대답에 쿠로코는 짧게 숨을 들이켰다. 아무 티도 내지 않았는데 벌써 들통나버린 것 같았다. 떨리는 손끝을 자근자근 누르며 쿠로코는 입술을 깨물었다.
"여전히 능청스럽네요, 아카시군은."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하는 목소리가 떨려왔다.
"그런가? 하지만 사실이야. 난 늘 기다리고 있었어, 테츠야. 그때부터 쭉."
그때부터, 쭉? 왜? 근거없는 기대감에 쿠로코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러고보니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아카시가 제 머릿속을 들여다 본 듯, 사람 속을 훅 들었다 놓았던 게. 아직 마음을 자각하지는 못한 채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시기였다. 아카시를 피하려 늦게 나오는 꾀를 부리다 되려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려던 아카시를 딱 마주쳤던 그날, 예기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자신은 눈동자를 도록도록 굴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런 저를 보던 아카시가 슬쩍 웃음을 머금고, 느릿하게 눈을 감으며, 자신의 옆을 지나가기에
안심하려는 찰나,
"기다리고 있어, 테츠야."
쿠로코는 숨을 멈춘 채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뭘? 뭘 기다린다는 말입니까?
"네가 다른 눈으로 나를 좇는 그 날을."
아카시는 의아한 말을 뱉은 뒤 홀연히 사라졌다. 하지만 쿠로코는 얼은 듯이 그 자리에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카시의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돌았다. 다른 눈. 눈. 다른. 그리고 그 순간, 쿠로코는 자신을 혼란스럽게 한 감정의 정체를 깨달았다.
아카시는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막상 깨닫고 나니 이후가 두려웠었다. 아카시가 전과는 다른 시선이 닿고 나면 자신을 좋게 대할지 나쁘게 대할지 말해주지 않았으니까. 후자가 두려워서, 쿠로코는 감추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꼭꼭 숨긴 애정이었다. 그래서였다.
잊고있던 기억이 떠오르자 쿠로코는 소리없이 경악하며 아카시를 바라보았다. 아카시가 여유롭게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만이 방 안에 울렸다. 설마, 그 때부터. 후자가 아니라 전자였나? 쿠로코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렸다. 복잡해져 느릿하게 돌아가는 머리로 겨우, 쿠로코는 빨리 아카시로부터 무언가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무, 무슨 의미인가요, 아카시군?"
"……."
"아카시 군…!"
"쉿."
휙, 바람소리가 났다. 눈을 잠깐 꾹 감았다 뜨니 코 닿을 듯 가까이 얼굴을 맞댄 아카시가 눈 앞에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오른쪽 눈동자가 번쩍였던 것도 같다. 어느새 쿠로코는 아카시의 품에 안겨있었다. 쿠로코가 멍하니 눈만 깜박였다.
"아카시 군…?"
"응."
상대는 별 미동이 없어보였으나 가만히 숨을 고르며 안겨있으려니, 감겨있는 팔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아. 순간 모든 것이 훅 다가왔다. 그제서야 두루뭉실하던 게 감이 잡히는 기분이었다. 깨닫고 나니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많이, 기다렸습니까…?"
"그래, 무척이나."
"늦게 알아서 미안합니다."
대답없이 저를 힘있게 끌어안는 팔이 단단했다. 팔의 주인이 슬쩍 웃는 것 같기도 했다. 쿠로코가 품에 얼굴을 묻으며 강한 몸을 마주 끌어안았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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