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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션주신_소재로_최애커플_동인지_1P연성 해시태그입니다.
* 소재 : 후드티
* 라라님의 리퀘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A5 사이즈 글자 9.8pt 1페이지 기준입니다. 지금 분량은 약 한 페이지 반입니다.
꿈을 꿨다. 네가 무겁게, 내 몸을 내리 누르는 꿈이었다. 꿈인데도 숨이 막혔지만 이상하게 난 행복했다. 해맑게 웃고 있는 네 눈부신 미소가 내 가슴으로 망울져 내렸기 때문이다. 온몸이 행복으로 젖어들 무렵, 어슴푸레한 내 시야를 담고 있는 눈꺼풀 위에 내려앉은 건 다름 아닌 유난히도 축축한 공기와 차가운 침묵이었다. 다행히,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아카시는 누워있던 몸을 일으켰다. 정면에 있는 창밖은 뿌옇게 변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난히 몸이 무거웠던 이유가 이거였나. 어렴풋이 안개주의보가 내릴 예정이라던 일기예보가 생각이 났다. 별 다른 움직임 없이 기억을 되새기며 희뿌연 바깥을 쳐다보고 있던 아카시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불을 정리했다. 끝을 맞추고, 곱게 접어 가지런하게. 늘 해왔던 것처럼. 아니, 쿠로코와 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했던 것처럼. 일어나서 할 일이 많았다.
이부자리가 놓여있던 주변은 어수선했다. 쿠로코의 물건이 여기저기 늘어져있는 탓이었다. 가만히 그것들을 내려다보던 아카시가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후우-. 미루고 미루다 이제야 시작하는 일이었다. 아카시는 마음을 굳게 먹고 물건들 사이로 가 앉았다. 옆의 상자는 반쯤 찬 채였다.
쿠로코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일은 괴로웠다. 어느 것 하나 연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제 성화에 못 이겨 입고서 부끄러워했던 앞치마, 단정한 모습을 고집했던 새하얀 양말. 함께 졸린 눈으로 양치질했던 칫솔과 쿠로코의 숨결이 닿은 컵. 진득하게 남아있는 추억의 잔재들과, 물건에 닿은 손끝에서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착각에 아카시가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도 저기도 쿠로코가 자꾸 묻어있다. 쿠로코는 이제 이 세상에 없는데.
손가락을 말아 쥐고 있던 아카시가 이번엔 옷장으로 손을 뻗었다. 이런 식으로 미루다간 평생 쿠로코의 잔해들을 처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옷장 여는 소리가 조용한 방안을 울렸다. 열린 옷장에서는 향긋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났다. 기억속의 쿠로코가 빨래가 잘 말랐다며 말갛게 웃었다. 쿠로코는 늘, 빨래에 꼬박꼬박 섬유유연제를 넣었다. 향기가 좋은 게 입을 때 기분도 좋지 않나요, 아카시군? 네 목소리가 들렸다. 옷을 정리하던 손길이 이젠 정리를 하는 건지 헤집는 건지 모를 정도로 거칠었다. 옷이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둔탁하게 울리는 소리에 그제야 정신이 든 아카시는 발치에 떨어진 옷을 주웠다. 그건 후드티였다. 처음으로 너와 색을 맞춰 같이 구입한, 이름도 간지러운 커플 후드티.
- 이런 걸 어떻게 입습니까.
- … 잘 어울리긴 하네요.
- 집에서라면 입어드리겠습니다.
끝끝내 계산을 하고 고집스레 손에 쥐어준 종이봉투를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히면서도 소중하게 꼭 쥐었던 쿠로코가 아른거리는 시야에 차올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좀 더 근사한 걸 처음으로 같이 맞춰 선물할 것을. 하다못해 우리가 연인이라는 증표인 반지라도 고 예쁜 왼손 약지에 끼워줄 것을. 왜 그렇게 빨리 갔어, 테츠야. 후드티를 끌어안은 아카시가 주르륵 힘없이 옷장에 기대며 주저앉았다. … 끅. 목울대가 뜨거웠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세찬 빗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후드티에 얼굴을 파묻고 헐떡이면서도 아카시는 일기예보에 비 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하고 생각했다. 예고 없던 비는 기상청을 무시하듯 거세게 쏟아졌다. 창틀에 맺힌 빗방울이 방울이 되어 떨어졌다. 투둑. 툭. 아카시는 멍하게 그 소리를 들었다. … 이 비가 오려고 그렇게 안개가 부연했구나.
그렇게…,
그렇게…….
감은 아카시의 눈에서 비와도 같은 눈물이 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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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 : 우유 마시는 쿠로코에 반한 카사마츠
* 루네님의 리퀘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A5 사이즈 글자 10pt 1페이지 기준입니다. 지금 분량은 약 두 페이지입니다.
카사마츠를 살피는 키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아까 복도에서의 조우 이후로 쿠로코를 신경 쓰는 듯한 기색의 카사마츠가 영 맘에 들지 않았다. 평소엔 투명소년, 투명소년 하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으면서 쿠로코가 살짝 웃어줬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한눈에 뿅 가버린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물론 우리 쿠로콧치가 좀 예쁘고, 어? 귀엽긴 한데! 그건 나만 알고 있는 거라고! 키세는 티는 못 내고 속으로만 부루퉁하게 중얼거리며 괜히 물고 있던 빨대의 끝만 질겅질겅 씹었다. 이러든 저러든 간에 온천욕이 끝나고 먹는 우유는 맛있단 말이지.
“어라? 키세!”
“카가밋치…?”
“그리고 카이조 주장!”
“너네도 목욕하고 이제 나온 거야?”
“당연하지! … 예요.”
말없이 휴게실로 향하던 키세와 카사마츠가 만난 사람은 또 우연찮게 카가미와 쿠로코였다. 목욕을 하다 나온 참이었는지 두 사람의 볼이 복숭아마냥 발그레하게 달아올라있었다.
“또 뵙네요.”
“쿠로콧치!”
쿠로코를 보자마자 얼굴이 활짝 핀 키세가 달려들려고 하자 카가미가 키세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키세가 캑캑거리며 버둥거렸다.
“안 돼! 열 올랐다가 막 식은 참이란 말이야!”
쿠로코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쿠로코의 볼이 유독 더 붉게 물들어있었다. 또 온천에 오래 있었냐며 키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갑자기 쿠로코와 키세 사이로 손이 쑥 들어 왔다.
“마셔.”
“… 카사마츠 선배.”
아까의 자신과 같이 사이를 막아버린 카사마츠에 키세가 서늘한 시선을 날렸지만 카사마츠는 키세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 쿠로코에게 들고 온 우유를 내밀었다. 키세가 이를 빠득 갈았다.
“아, 감사합니다.”
“쿠로콧치! 포카리스웨트 더 좋아하죠? 내가 뽑아줄게, 기다려요!”
키세가 다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쿠로코는 이미 따버린 우유 뚜껑을 들고 흔들었다.
“이미 땄습니다. 그냥 이거 마실게요.”
“아니…! 그, … 네.”
더 이상 방해하면 쿠로코가 의심할 것 같아 키세가 입을 다물며 카사마츠를 노려보았다. 카사마츠는 여전히 아무 반응하지 않고 그냥 쿠로코를 주시할 뿐이었다. 쿠로코는 딱딱한 둘의 분위기는 딱히 의식하지 않고 뚜껑을 손바닥에 말아 쥔 채 우유를 두 손으로 붙잡고 꼴깍꼴깍 마시기 시작했다. 불그스름해 한 입 깨물고 싶은 볼과 야무지게 쥐어져 있는 손, 입구를 물고 있는 뾰족하고 앙증맞은 입술, 우유를 삼킬 때마다 울렁이는 목젖이 남자인데도 깜찍하게 느껴졌다. 자판기에서 음료를 고르고 있는 카가미를 제외한 키세와 카사마츠가 저도 모르게 넋을 놓고 쿠로코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귀엽다. 귀엽다. 귀여워….
한참이나 우유를 넘기던 쿠로코가 반 정도 비워지자 푸하- 소리를 내며 우유를 입에서 떼었다. 그 소리에 화들짝 놀라 정신을 차리다 눈에 띈 입술에 묻은 흰 우유가 왜인지 몰라도 선정적이라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사마츠 씨.”
“오, 오우.”
곧게 시선을 마주해오며 생긋 미소를 머금은 채 감사를 전하는 쿠로코에 카사마츠가 손으로 붉어진 얼굴을 가리며 대답했다. 키세가 노려보는 눈빛 따위는 간지러울 정도로 눈앞의 쿠로코가 강렬했다. 위험해. 자기가 한 행동으로 인해 완전 확인사살 당한 격이었다. 앞으로 투명소년을 투명소년이라 부르지 못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미, 눈이 아닌 마음에 박혀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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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멘션주신_소재로_최애커플_동인지_1P연성 해시태그입니다.
* 소재 : 눈에 띄다
* 톰애토님의 리퀘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A5 사이즈 글자 9.8pt 1페이지 기준입니다. 지금 분량은 한 페이지 반입니다.
“캬하! 역시 합숙하면 온천이지!”
“카가미 군, 온천에 익숙해진 모습이네요.”
“오우! 저번에도 온 적 있으니까 말이야!”
카가미가 어깨에 수건을 걸친 채로 씩 웃었다. 윈터컵이 끝난 후 세이린은 모처럼 다 같이 온천을 방문했다. 굳은 몸도 풀 겸, 모두가 좋다며 동의한 합숙이었다. 들떠서 왁자지껄한 선배들을 따라 쿠로코와 카가미도 모처럼 온천을 즐길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가벼운 발걸음을 떼었다.
“어라? 쿠로콧치?”
“카, 카이조?!”
“쿠로콧치~ 여기서 만나다니 우린 운명인가봐요!”
앞이 갑자기 떠들썩해지기에 무슨 일인가 하고 보려 빼꼼 내밀어진 쿠로코의 얼굴이 누군가에 의해 덥석 끌어 안겨졌다. 상대는 안 봐도 뻔했다.
“… 놔주세요, 키세군.”
“싫슴다! 윈터컵 끝나고 처음 만나는 걸요!”
징징대기만 하고 떨어질 생각을 않는 키세에 쿠로코가 숨을 들이쉬며 이그나이트를 날리려 손목을 매만지는 순간 둔탁한 소리가 위에서부터 들려왔다.
“악!”
“너 인마, 키세! 작작 좀 하지 못해?”
“그렇다고 머리를 때리면 어떡함까!”
있는 힘껏 손날로 키세의 머리를 가격한 키세가 우는 소리를 하는 키세를 밀치며 쿠로코의 앞에 다가 섰다.
“미안, 쿠로코. 대신 사과하지.”
“아닙니다, 카사마츠 씨. 좋은 일격이었습니다.”
빤히 자신을 올려다보며 생긋 웃는 쿠로코에 순간 얼굴이 불이 붙은 것 마냥 화르륵 붉어진 카사마츠가 홱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렸다.
“카사마츠 씨?”
쿠로코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카사마츠는 고개를 돌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벌겋게 익은 귀가 보였다. 부루퉁하게 입을 삐죽이고만 있던 키세가 카사마츠의 이상한 분위기를 알아채고 쿠로코 앞을 잽싸게 가렸다.
“아하하, 선배가 온천욕을 하고 나와서 갑자기 열이 올랐나 봐요! 신경 쓰지 말고 가요!”
안 그래도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저와 키세를 번갈아보고 있는 카가미와 선배들이 마음에 걸렸는지 쿠로코가 머뭇거리다 그럼, 하며 고개를 꾸벅 숙인 후 자리를 떴다. 키세는 자신과 카사마츠의 옆을 지나가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쿠로코의 뒤통수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카사마츠를 서늘하게 노려보다 손으로 그 시선을 차단했다. 카사마츠가 이렇게 얼굴을 붉히고 쳐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여자들이었는데 쿠로코를 보고 똑같은 반응을 보이다니. 어딜 봐도 수상했다.
“보지 말아여, 닳슴다.”
“….”
“쿠로콧치 탐내는 거 아니죠? 내 건데.”
침묵을 고수하던 카사마츠는 그대로 키세의 엉덩이를 세게 걷어찰 뿐이었다.
야, 키세. 미안해서 어쩌냐? 이미 눈에 박혀 들어서 앞으로 계속 띌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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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재 : 사탕
* 샤라님의 리퀘를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A5 사이즈 글자 9.8pt 1페이지 (+조금 초과) 기준입니다.
“하루. 사탕 좀 그만 먹어.”
“….”
“무시하지 말고! 야, 하루!”
고개를 홱 돌려버리는 하루에 린이 인상을 찌푸리며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안 그래도 평소 식습관이 엉망인 하루인데 요즘 맛이 들렸는지 종일 입에 물고 있는 건 사탕, 사탕뿐이었다. 차라리 고등어만 먹을 때가 나았다고 생각하며 린이 돌아간 하루의 턱을 한 손으로 턱 붙잡았다. 버티는 고개를 어찌어찌 힘으로 제 쪽을 보게 돌렸더니 찌푸려진 미간과 날카로운 눈빛은 나 심기가 불편해요-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어쭈? 사탕 그만 먹으라고. 제대로 된 밥을 챙겨먹으란 말이야!”
“싫어.”
“그럼 고등어라도 먹던지!”
“싫어. 사탕이 좋아.”
이 고집이 어디 가겠는가. 턱을 붙잡은 손에 힘이 꾹 들어가자 하루의 볼이 점점 눌러져 입술이 뾰족이 튀어나왔다.
“린, 아파.”
“사탕 안 먹겠다고 약속하면 풀어주지.”
“… 싫어.”
“너…!”
이를 빠득 가는 린과 버티고 있는 하루의 사이에 불꽃이 파박 튀었다. 둘 다 물러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참동안이나 말없이 하루를 노려보고 있던 린이 손가락에 힘을 줘 하루의 입을 벌렸다.
“아파! 뭐… 읍!”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황을 알아채기도 전에 뜨거운 혀가 입 안으로 밀려와 사탕을 빼앗고는 여린 살들을 훑어냈다. 촉, 하는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지고 하루가 붉어진 얼굴로 화들짝 입을 가렸다. 린은 태연한 얼굴로 입 안에 들어온 사탕을 까드득 깨물 뿐이었다.
“무, 무슨!”
“난 경고했어.”
“린!”
“앞으로 내 말 무시하고 또 사탕 먹으면, 더 심한 걸 당하고 싶다는 뜻으로 알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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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카시 세이쥬로 x 쿠로코 테츠야
* 두 사람은 사귀어 동거하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잊혔다.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선천적으로 흐릿한 존재감이었다. 조용한 성격인지라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았지만 서글픈 순간도 많았다. 태어난 날이 뭔지 12시가 되어도 조용한 휴대폰을 보고 있자면 이루 말 못할 기분에 가라앉곤 했다. 당일 축하를 아예 받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다른 날과 차이가 날만큼 왁자지껄한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생각해보니 오기와라 군만큼은 꼬박꼬박 생일 축하 문자를 보내줬었지. 쿠로코는 의자에 웅크려 앉은 채로 책상 위의 달력을 톡톡 두드렸다.
“뭐하고 있어?”
“아, 아카시 군. 씻는 거 빠르네요.”
“별로. 평소랑 같았다고 생각하는데.”
“아….”
“테츠야가 생각에 잠겨있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거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무슨 생각을 했어?”
젖은 머리를 털다 만 아카시가 쿠로코의 뒤로 다가와 어깨에 팔을 걸쳤다. 덜 마른 머리카락 끝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살짝 머리를 흔든 쿠로코가 고개를 젖혀 아카시를 올려다보았다.
“곧 1월도 끝나는구나, 싶어서요.”
“그러네.”
느릿하게 눈을 깜박이는 쿠로코를 내려다보는 아카시의 눈매가 부드럽게 풀어졌다.
“그리고, 내 사랑하는 테츠야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지.”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무슨 그런 소릴 하냐는 듯 아카시의 눈이 커졌다. 살풋 웃은 쿠로코가 웃음기를 머금은 채로 아카시의 뺨을 향해 손을 뻗자 아카시가 눈을 감으며 손바닥을 붙잡고 뺨을 부비작거렸다. 둘만 있을 때마다 종종 아카시가 부리는 일종의 어리광이었다. 막 씻고 나온 아카시의 뺨이 따끈따끈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네 생일이야. 그런 식으로 말하면 서운해.”
“미안합니다. 옛날 생각이 조금 나서요.”
“옛날?”
“아카시 군의 눈에 띄기 훨씬 전입니다. 조용히 집과 학교, 도서관만 다닐 때요.”
“그 때의 테츠야도 분명 귀여웠겠지. 좀 더 빨리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촉. 아카시의 부드러운 입술이 쿠로코의 손바닥에 닿았다. 간지러움을 참지 못한 쿠로코가 키득키득 웃었다.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지금보다 체구가 작고, 어렸겠지만 그 뿐인 걸요.”
“난 내가 보지 못한 테츠야의 모든 모습이 궁금해.”
“네에, 네. 지금부터 더 많은 저를 볼 거잖아요?”
“그러니 지금 이렇게 얌전하게 있는 거지. 여튼, 그 때가 왜?”
대답을 고르는 쿠로코의 시선이 먼 곳을 보듯 아득해졌다. 그러니까, 그 때가.
“조용한, 생일이었거든요. 원래 방학이랑 겹치는 데다, 혼자 테이코로 갔으니까요.”
아카시가 감고 있던 눈을 떠 쿠로코를 바라보았다. 회상에 잠긴 쿠로코가 반대로 눈을 감으며 말을 이었다. 아카시는 일단 지켜보기로 마음먹으며 손을 깍지 껴 잡았다.
“오기와라 군한테 축하한다는 문자를 받긴 받았는데, 그 이후로 축하를 받았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기분이 안 좋았던 것도 같아요. 맛있는 밥을 먹어도 즐겁지 않아서 저녁부터 책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어렸구나. 상상하니 역시 귀여워.”
“도대체 어디가요. … 하아. 지금 생각해봐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에게 받는 축하와 별개로, 친구들한테도 축하받고 싶은 마음이었던 걸까요.”
“그럴지도.”
“조금, 욕심 부렸구나 싶어서. 이렇게 말하니 또 조금 착잡하네요. 하하.”
“… 그래서 테츠야는, 그 생일이 지나가는 마지막 순간에, 울었어?”
“아니요, 울진 않았습니다.”
아카시가 미소를 지으며 쿠로코의 입술에 살며시 입술을 맞댔다. 여자아이의 촉촉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아닌 까슬한 입술이었으나 그 편이 오히려 쿠로코 같아서 더 달콤하게 느껴졌다.
“잘했어. 우는 게 나쁜 건 아니지만. 내 테츠야가 혼자 울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잘도 그런 말을 하네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익숙해질 때도 됐잖아?”
“글쎄요…. 그 이후로는 아오미네 군이나 키세 군, 무라사키바라 군, 모모이 씨, 그리고 아카시 군이 있어서 시끌벅적했네요. 2학년 때 모두를 만났으니까요.”
“… 응.”
기분 좋게 휘어져있던 아카시의 눈이 가늘어졌다. 손깍지가 느슨해지는 순간을 놓치지 않은 쿠로코가 더 강하게 깍지를 껴왔다.
“아카시 군이 무슨 생각했는지 맞춰볼까요?”
“호오.”
“제가 농구부를 나간 후 돌아오는 생일을 생각했었죠?”
“테츠야도 귀신 다 됐네.”
“아카시 군 하루 이틀 봅니까.”
아예 이쪽으로 몸을 돌리고 의기양양하게 씩 웃는 쿠로코에 아카시도 졌다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정답이야.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손길에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걸렸다.
“그 때는, 많이 힘들었지만. 고통이 있어야 행복도 있는 법 아닐까요. 덕분에 전 지금 이렇게나 행복합니다.”
“….”
“아오미네 군의 웃는 모습도 보게 되고. 아카시 군도 다시 만났고, 더해서 이기기까지.”
“그 얘기는 하지말자.”
“후훗. 미안합니다.”
“괜찮아.”
“네. 여튼 그래서 작년 생일이 그렇게 즐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아, 하긴.”
잠깐 약 1년 전 쯤의 왁자지껄한 기억을 꺼내던 두 사람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즐거운 생일이 언제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즐거운 날이었다. 예상치 못한 인물들도 많이 만났다. 설마 눈앞의 인물이 올 줄이야. 주섬주섬 책상 서랍에서 그날의 사진을 꺼낸 쿠로코가 빙그레 웃었다. 자신과, 아카시와, 아오미네, 미도리마, 키세, 모모이까지. 마냥 즐거웠던 중학생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사진을 쓸고 있자니 아카시도 고개를 숙여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렇게 다 같이 사진을 찍었던 적이 있었던가?”
“글쎄요, 기억이 잘 안 납니다.”
“소중한 사진이네.”
“그러네요. 아카시군도 올 줄 몰랐습니다.”
“모처럼이니까 그런 왁자지껄한 장소에도 가보고 싶었어. 네가 보고 싶기도 했고.”
“우연이네요, 저도 아카시 군이 보고 싶었거든요.”
“어라, 이건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할까.”
“마음대로 착각해도 좋습니다.”
“후후. 귀여운 말을 하는구나, 테츠야.”
앉아있던 쿠로코가 자리에서 일어나 아카시 앞에 마주 서자 아카시가 팔을 뻗어 쿠로코의 등을 끌어안았다. 은근히 차이나는 체격에 파묻힌 쿠로코가 가슴팍에 뺨을 기대왔다.
“재밌는 날이었죠?”
“응.”
“저도 행복했습니다.”
“다 테츠야가 꿋꿋이 잘 버텨준 덕분이야. 그 근성을 높이 사고 있어. 과연 내가 반할만 해.”
“감사합니다.”
낯간지러운 말을 하며 연신 이마에 촉, 촉 연달아 입을 맞추는 아카시에 얼굴을 붉히던 쿠로코의 눈이 이어지는 아카시의 질문에 동그랗게 떠졌다.
“그래서, 올해 생일 선물은 어떤 걸 받고 싶어?”
“챙겨주는 겁니까?”
“… 하아. 넌 좀 네 입장을 자각할 필요가 있어.”
“…?”
“이 아카시 세이쥬로의 애인이라는 걸 말이야. 내가 네게 반했고, 널 선택했어. 사랑하는 사람 생일인데 챙겨주고 싶은 게 당연하잖아. 테츠야가 내 생일을 축하해주고 싶은 것처럼 말이야.”
“이해했습니다.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요.”
“그래. 지금이라도 생각해놔. 뭐든 괜찮으니까.”
“으음….”
“아니면 내가 고를까?”
순간 반짝하고 빛난 아카시의 눈빛을 눈치 챈 쿠로코가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카시가 선물을 고를 때 그 금액이 어디까지 치솟을지 생각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아니요, 저기, 음….”
“응?”
“아, 아카시 군의 사랑이 담긴 게 좋습니다. 단순한 게 아니라, 그….”
“그?”
“특별한, 하나뿐인 걸요.”
“흠….”
상황을 벗어나고자 대충 얼버무린 말이 생각보다 적합한 듯 해 쿠로코는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카시는 쿠로코가 내준 숙제 아닌 숙제에 곰곰이 생각에 몰두해있는 눈치였다. 아카시의 기분을 살피던 쿠로코가 씩 웃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 *
“이렇게 된 거야.”
“으음, 어렵네. 하나뿐인 거라니. 테츠가 바라는 것도 있고 별일이네.”
“그냥 돈 주고 엄청나게 비싼 거 사면 되는 거 아님까?!”
“쿠로코가 그런 걸 원해서 저런 말을 했겠냐는 거다, 바보 키세.”
“하? 저 바보 아님다!”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지는 주변에 얌전히 팔짱을 끼고 있던 아카시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이 바보들을 내가 왜 불렀을까. 인내심이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있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보석이라던가, 그런 거 있지 않슴까! 아카싯치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고!”
“키세 너 진짜 바보냐? 거기엔 아카시의 사랑이 없잖아, 사랑이!”
“아오미넷치한테 바보 소리 듣고 싶지 않슴다!”
“뭐, 인마?!”
“다들 조용히, 좀, 하지 그래.”
아카시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 얼굴로 경고를 날렸다. 어느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로의 볼과 머리끄덩이를 붙잡고 있던 키세와 아오미네가 투덜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미도리마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안경을 추켜올렸다.
“너네는 스무 살이 되어도 왜 성장하지 않냐는 것이다.”
“아앙? 그러는 넌 얼마나 자랐는데?!”
“미도칭은 키 얘기를 하는 게 아니구~”
관심 없다는 듯 축 늘어져있던 무라사키바라가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아직 쿠로칭 생일 좀 남았으니까 아카칭이 뭐라도 만들어주면 되는 거 아냐? 쿠로칭 당연히 좋아할테구.”
“음?”
“예를 들면 어떤 게 있냐는 거다.”
“우움…. 생일이니까 케이크가 좋을 것 같구.”
“오, 좋네여! 아카싯치가 만들면 그게 바로 사랑이 담긴 거죠!”
의외로 빨리 튀어나온 좋은 방안에 모두가 괜찮다며 무라사키바라의 등을 두드렸다. 무라사키바라는 귀찮아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데 케이크는 어떻게 만드는 거지?”
“그러게요? 맨날 여자애들이 만들어오는 것만 먹어봤슴다.”
“모모이가 만든 걸 보면 더럽게 어려워 보이는데.”
“별로… 딱히 어려운지 모르겠구….”
예상치 못한 무라사키바라의 두 번째 어택에 전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만들어 본 적 있어, 아츠시?”
“나 파티셰 될 거니까 학원 다니고 있구.”
“에엑, 무라사키바랏치 언제 그렇게 혼자 어른이 된 검까!”
서운하다며 키세가 들러붙어 징징거리자 무라사키바라가 키세의 머리를 꾸우욱 눌렀다. 키세칭, 떨어져-. 너무함다! 조용해질만 하면 금방 다시 시끄러워지는 친우들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아카시가 손으로 턱을 쓸었다.
“좋아. 아츠시, 내게 케이크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줘.”
“에? 귀찮아서 하기 싫구….”
“한 달 치 과자 선물할게.”
“언제부터 하면 돼?”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연습이 필요할지도 모르니까.”
“아카칭이라면 잘할 거구.”
속전속결로 이루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에 멀뚱히 눈만 껌벅이던 키세와아오미네가 황급히 얼굴을 들이밀었다. 미도리마는 안경을 빛내며 쳐다보고 있었다.
“저도, 저도 만들고 싶슴다!”
“테츠를 위해서라면 케이크쯤이야!”
“뭐… 굳이 내 도움을 원한다면 해주겠다는 것이다.”
“괜찮아. 필요 없어.”
상큼한 웃음을 선사하며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한 아카시에 키세의 얼굴이 가장 먼저 찌글찌글해졌다. 아오미네의 인상이 험악해진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왜요! 저두 잘 할 수 있슴다!”
“테츠야를 위한 사랑의 선물은 나만 줄 거야.”
“아카싯치, 욕심쟁이!”
으와아앙, 하고 키세가 떼를 쓰려는 순간 아카시가 말을 이었다.
“대신, 케이크 위에 올릴 장식 같은 건 만들어도 좋아.”
“정말임까?!”
“오우, 그거도 좋아!”
“신타로도 럭키 아이템 만들어서 올려보는 건 어때?”
“쿠로코가 필요로 할 테니 나쁘지 않겠군.”
아오미넷치 뭐로 할 검까? 저는 저랑 쿠로콧치랑 쿠키로 만들 검다! 음, 난 농구공 모양 초콜릿? 으하하, 그거 만들 수는 있슴까? 아앙? 투닥거리면서도 어떤 걸 만들지 벌써부터 눈을 빛내는 아오미네와 키세에 아카시가 가볍게 하하, 웃었다.
“아카칭, 너무 착하구.”
“재밌잖아? 테츠야도 좋아할 것 같고.”
“으응, 그건 그래. 그치만 내 일이 늘어나구….”
“사탕이랑 초콜릿도 사줄게.”
“얼른 하자.”
“그래그래.”
그렇게 해서, 키세키들의 [쿠로코 테츠야 생일 케이크 만들기] 가 시작되었다. 장소는 당연히 아카시 본가의 부엌이었다. 오븐에, 각종 기구들이 미리 준비되어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제대로 위생모와 위생복을 갖춰 입은 무라사키바라가 똑같은 복장의 키세, 아오미네, 미도리마 앞에 섰다.
“귀찮지만… 쿠로칭을 위해서니까 열심히 하구.”
“오우! 잘 부탁한다!”
“저처럼 예쁜 쿠키 구울 거니까여!”
“럭키 아이템으로 개구리를 구울 예정이라는 것이다.”
“난 뭘 하면 되지?”
“아카칭은 제일 중요한 케이크니까 조금만 기다리구. 아니면 놓여있는 책을 봐도 좋구. 아카칭은 미리 다 봐왔겠지만.”
“한 번 더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 그래.”
무라사키바라가 시끌벅적 떠드는 키세와 미도리마, 아오미네에게 다가갔다. 키세칭, 일단 그건 놓구-. 초보자인 세 사람을 위해 기본적인 과정은 전부 아카시 가의 전속 파티셰에게 부탁해놓은 상태였다. 미리 만들어진 쿠키 반죽과 녹은 초콜릿을 키세와 미도리마, 아오미네에게 각각 내밀며 무라사키바라가 방법을 알려주었다.
“키세칭이랑 미도칭은 이거 밀대로 밀어서 원하는 모양 틀로 찍어내면 되구, 미네칭은 녹은 초콜릿을 여기 틀에 부으면 되구. 저절로 공 모양으로 나올 거야.”
“뭐야, 간단하잖아?”
“열심히 하겠슴다!”
“흥. 이런 건 금방 한다는 거다.”
금방 각자의 과제에 빠져든 세 사람을 뒤로 하고 뒤로 돌아선 무라사키바라가 혼자 무언가를 시작하고 있는 아카시에게 다가갔다.
“아카칭, 뭐해-?”
“아아. 책을 보고 따라서 만들어봤어. 머랭이라는 거, 이렇게 만들면 되는 건가?”
“역시 아카칭. 완벽하게 잘 만들었네.”
“과찬이야.”
“내가 도와줄 필요도 없겠구. 여기에 이 박력분을 체 쳐서 넣고 거품이 죽지 않게 휘저으면-.”
“으하하, 키세 너 인마-! 사람이 아니라 몬스터 아니야?”
“아오미넷치가 만든 공은 제대로 튀지도 않을 것 같슴다!”
“뭐라고?!”
와장창, 쨍그랑!
“….”
“나 잠깐 저기 갔다올게, 아카칭….”
“그래, 다녀와.”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짜증을 내는 무라사키바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카시는 케이크 반죽을 마무리했다. 처음에 들었을 땐 두루뭉술해서 어떤 걸 선물해야할지 잘 몰랐지만 만들면서 생각하니 어쩐지 의도를 알 것 같기도 했다. 좋아할 쿠로코를 생각하니 과정 하나하나에 정성과 마음이 들어갔다. 이렇게 애정으로 똘똘 뭉친 결과의 산물이 싫을 리가 없지. 나중에 자신도 생일날 부탁해볼까, 싶을 정도로 만드는 내내 쿠로코의 생각이 났다. 받고 좋아할 테츠야, 먹으면서 행복해할 테츠야. 쿠로코가 반대로 자신의 생일 케이크를 만들어 줄 때 이만큼 나를 생각하겠지.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일을, 아카시는 기쁘고 행복하게 임했다.
아카시의 케이크는 순조롭게 만들어졌다. 만드는 사람이 아카시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거품이 죽지 않게 재빨리 반죽을 조심스레 틀에 넣고 나니 금방 자신의 일을 끝낸 키세와 아오미네, 미도리마가 다가왔다.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다 끝났슴까?”
“응. 이제 굽기만 하면 돼.”
“오오-! 벌써부터 색이 예쁜데!”
“아카칭 너무 잘해서 가르칠 게 없었구.”
“하하. 오븐에 넣을게.”
“응.”
케이크를 오븐에 밀어 넣는 동안 키세가 만든 쿠키를 가져와 아카시에게 보여주었다.
“이거 봐여! 잘 만들었져?”
“음, 나쁘지 않네. 근데 왜 너랑 쿠로코로 추정되는 쿠키가 손을 잡고 있을까, 료타?”
“아, 하하. 그, 그러게요?”
“아카시, 내 농구공도 봐줘!”
“이건 농구공이야?”
“잘 보라고! 농구공 무늬도 있어!”
“그으래.”
“영혼 담아, 아카시!”
“음. 미도리마 개구리는 예쁘게 구워졌네.”
“당연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케이크 옆에 놓아둘 거다.”
- 띵.
“앗, 완성 됐나봐여!”
이게 뭐라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벌써부터 달콤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오븐의 문을 열자마자 잘 익어 노랗게 부풀어 오른 케이크가 보였다. 타지도 않고 적당히 구워진 게 딱 봐도 정말 맛있어보여서 모두가 감탄을 터뜨렸다.
“와, 진짜 잘 구워졌구.”
“으아아앙, 이것만 먹어도 진짜 맛있을 것 같아여!”
“안 돼, 우리가 장식한 거 올려야지!”
미도리마는 벌써부터 개구리 쿠키를 가져오고 있었다. 왁자지껄하게 장식을 가져오는 키세들과 달리 케이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아카시가 조용히 무라사키바라를 불렀다. 나도 좀 더 특별한 것이 있었으면.
“저기, 아츠시?”
“응?”
“나 하나 더 준비하고 싶은 게 있는데.”
“뭔데?”
“그게….”
* * *
“생일 축하해 테츠야.”
“감사합니다, 아카시 군”
대망의 1월 31일. 00시 00분이 되자마자 쿠로코를 끌어안고 뉴스를 시청하던 아카시가 쿠로코의 뺨에 살짝 입을 맞췄다. 문자가 아니라 바로 직접 듣는 생일 축하는 생각보다 더 감동적이어서 쿠로코가 활짝 웃었다. 사실 선물이니 뭐니 얘기했었지만, 당장 곁에 아카시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한 쿠로코였다. 그런데 갑자기 아카시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잠옷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잠시 후 손에 들려 나온 것은 안대였다.
“저, 저기 아카시 군…? 뭐하는 겁니까?”
“생일 선물. 받고 싶다고 했었잖아?”
“앗. 우와….”
진짜로 준비해줬을 줄이야. 눈이 가려져 앞이 안 보였지만 다른 의미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카시는 정말 자기 말대로 특별한 무언가를 준비해뒀을 터였다. 이 사람이 어떤 걸 준비했을지, 벌써부터 기대감과 행복함에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어두운 시야로 아카시가 손을 잡아오는 감각이 느껴졌다.
“조심해서 걸어, 테츠야. 내가 있으니 안전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네.”
아카시의 손에 의지해서 몇 발자국 걸었을까, 쿠로코를 멈춰 세운 아카시가 쿠로코의 뒤에 서 어깨를 감싸듯 붙잡았다.
“준비 됐어?”
“잠시만요. 후, 하…. 네. 준비 됐습니다.”
“네가 기뻐해줬으면 좋겠어.”
아카시가 말을 끝낸 후 조심스럽게 안대를 벗겼다. 뭐가 있을까. 안대를 꼈음에도 눈을 꼭 감고 있던 쿠로코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쏟아지던 빛에 눈이 부시던 것도 잠시. 아카시가 데려간 부엌의 식탁 위에는, 예쁜 케이크 하나가 있었다. 동그란 원형의 아이보리색 크림 케이크. 위에는 생일 축하해, 테츠야. 가 초콜릿으로 쓰여 있고 그 옆에 사람모양의 쿠키 두 개와 농구공 모양 초콜릿, 개구리 모양 아이싱 쿠키가 놓여 있었다. 딱 봐도 누가 준비해준 건지 티가 나는 케이크에 쿠로코가 아카시를 돌아보았다.
“이건…?”
“사실 준비하면서도 맘에 들지 모르겠더라. 열심히 힘내긴 했는데 말이야. 내가 만든 케이크야.”
“아카시 군….”
“장식은 키세랑, 아오미네랑, 미도리마랑, 무라사키바라가 도와줬어. 그 녀석들 답지?”
“정말이네요. 누가 만들었는지 바로 알겠습니다.”
쿠로코가 케이크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빙그레 웃었다. 쿠키에 그려진 선은 울퉁불퉁하고, 농구공은 초콜릿이 섞여 얼룩이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그 편이 더 키세들다워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초콜릿으로 쓰여 있는 글자가 만든 사람과 꼭 닮아 정갈하고 단정했다. 모든 사람들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케이크였다. 작년의 생일만큼이나 행복한 마음에 쿠로코가 아카시를 끌어안고 얼굴을 폭 파묻자 아카시가 조심스럽게 쿠로코를 마주 끌어안았다.
“감사합니다, 아카시 군.”
“기뻐해주는 거야? 만들고 나서도 너무 소박한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었어.”
“아니요, 정말로. 정말로 맘에 드는 선물입니다.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그래? 다행이야.”
“아까워서 못 먹겠습니다.”
“아깝긴. 그리고 내 선물은 먹어봐야 알 수 있어.”
“…? 선물이 또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저렇게 튀는 장식을 했는데 나만 단순히 케이크를 할 순 없잖아.”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감사한데요….”
“글쎄? 일단 먹으면서 얘기하자.”
아카시가 쿠로코를 의자에 앉혔다. 쿠로코는 아카시의 말을 궁금해 하면서도 내심 케이크가 아까운 눈치였지만 아카시는 상관 않고 크게 조각을 내 쿠로코에게 건네주었다.
“먹어봐.”
“잘 먹겠습니다, 아카시 군.”
“응.”
쿠로코가 떨리는 마음으로 포크를 집어 들어 케이크를 갈랐다. 기포 하나 없고, 퐁신하게 잘리는 시트가 딱 봐도 맛있어보여서 절로 침이 넘어갔다. 작게 포크로 떠낸 케이크를 입에 넣고 잠깐 맛을 음미하던 쿠로코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턱을 괴고 쿠로코를 바라보던 아카시가 씩 웃었다.
“어때?”
“아카시 군….”
케이크를 삼키지도 않고 입에 머금고 있는 쿠로코의 눈에 감동이 가득 담겼다. 그도 그럴 것이 마냥 생크림으로 보이던 하얀 크림에서는 다름 아닌 바닐라 맛이 났다. 평소에 좋아해서 매일 먹다시피 사 먹는 M사의 쉐이크같은. 아까워서 마저 씹지도 못하고 쿠로코가 이도저도 못한 채 아카시를 쳐다보았다. 아카히군… 고마스이다…. 울 것 같은 얼굴에다 뭉개진 발음이 정말로 귀여워서 아카시가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선물을 좋아해줄까 불안하던 마음도 금방 사그라졌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아해줄까 고민해서 혹시나 하고 만들었는데, 이런 반응이 올 줄이야. 나도 덩달아 기쁘네.”
“이거라면 혼자서도 한 조각 다 먹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느릿하게 맛을 음미하고 꿀꺽 삼킨 쿠로코의 볼에는 홍조까지 띄워져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사소한 선물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자신을 생각하는 아카시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정말 자신의 말대로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아주아주 특별한 생일선물이었다. 이렇게까지 사랑해주는 사람이 또 있을까. 마음이 행복으로 부풀어 올라 터질 것만 같아 포크를 물고만 있던 쿠로코가 케이크를 입안에 가득 우겨넣고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쿠로코?”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아카시가 왜 그러냐는 듯 의아하게 쳐다보았지만 쿠로코는 아무 대답 없이 척척 아카시의 앞에 다가가 섰다.
“왜 그… 읍.”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쿠로코의 따뜻한 입술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입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부드러운 스펀지케이크와 바닐라 빈이 콕콕 박혀있는 달콤한 생크림. 차마 감지 못한 눈앞에는 사랑스러운 애인의 얼굴과 기다란 속눈썹. 그리고 자신의 뺨을 감싸고 있는 뜨거운 테츠야의 체온까지. 열려있는 감각으로 느껴지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달콤해서 아카시는 잠깐 생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어안이 벙벙했지만 이 순간이 황홀한 벌꿀을 들이부은 마냥 달콤하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끝나지 않기만을 바랐던 순식간의 입맞춤이 끝나고, 쿠로코가 입술을 아주 살짝만 뗀 채로 속삭였다.
“최고의 선물이자 생일입니다. 사랑해요, 아카시군.”
잠깐 멍해져 있던 아카시가 활짝 웃으며 다시 쿠로코를 와락 끌어안고 입술을 부딪쳤다. 마주 닿은 입술에서 쿠로코가 웃는 것이 느껴졌다. 네 행복이 곧 내 행복이야.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테츠야.
+) 뜨거운 키스, 그 후.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해야겠네요.”
“응. 그나저나 테츠야, 이것 좀 봐.”
“…? 그게 뭡니까?”
“바닐라 크림을 좀 더 만들어서 따로 담아왔어.”
“정말입니까? 케이크 먹기 아까웠는데 뭔가 위안이 되네요. 두고 두고 아껴 먹어야겠습니다.”
“아니, 이건 내가 먹을 거야?”
“아카시 군 단 거 싫어하지 않습니까?”
“싫어하는데, 좀 더 새로운 방법으로 먹어보면 어떨까하고.”
“어떻게요?”
대답 없이 크림이 담긴 통의 뚜껑을 연 아카시가 손가락으로 듬뿍 크림을 떠냈다. 쿠로코가 무슨 짓이냐며 묻기도 전에 아카시의 손가락이 쿠로코의 뺨을 훑고 지나갔다. 뺨에 무거운 크림이 느껴졌다.
“아카ㅅ- 앗!”
크림이 묻었다는 걸 알아챈 것도 잠시, 뺨에 금방 뜨끈한 체온이 닿았다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쿠로코가 뺨을 감싸고 아카시를 쳐다보았다. 혀끝으로 크림을 핥아내며 씩 웃음을 짓는 아카시의 눈이 잔뜩 휘어져 있었다.
“이익, 아카시 군!”
쿠로코가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소리쳤지만 아카시는 태연하게 맛을 음미할 뿐이었다.
“음, 이렇게 먹으니 단 것도 나쁘지 않은 걸?”
“제 말 듣고 있습니까?”
“한 번 더 실험해 봐야겠어.”
“실험은 무슨 실험, 히익, 놓아주세요!”
“우리 즐거운 생일을 보내 볼까, 테츠야?”
끌려가는 쿠로코가 버둥거렸지만 아카시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크림을 소중히 끌어안고 침실로 향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생일을 보내게 해줄게. 닫히는 문 사이로 달큰한 바닐라 냄새가 물씬 풍겼다.
[적흑] 이불빨래 (0) | 2017.05.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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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흑] 여름비 (1) | 2016.06.26 |
[적흑] 사무실에서.avi - 번외 +19 (0) | 2015.12.07 |
[적흑] 사무실에서.avi (31) | 2015.12.03 |
[청흑] 안식 (2) (0) | 2015.10.21 |
Brilliant Life
● 연예인 키세 x 시력을 잃어가는 쿠로코
● 전연령가 / 무선제본 (떡제본) / 약 160p 예상 / 코팅 / 날개有 / 12000원
※ 복지관에 봉사를 간 키세가 쿠로코랑 만난다는 설정입니다. 클리셰가 넘쳐나는 부족한 글입니다만 잘 부탁드립니다 (_ _)
※ 적힌 대로 쿠로코가 시력을 잃어갑니다. 당연히 키세가 쿠로코를 보며 말라가는 장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해피엔딩 성애자입니다. 두 사람은 금방 다시 행복해집니다. 주 내용은 그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청량한 여름의 일과들입니다.
※ 샘플 내용은 수정될 수 있습니다.
※ 확정된 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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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 : http://me2.do/xYltVWYx <<
[청흑] 안식 신간 인포! (0) | 2016.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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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흑온 써클컷 (0) | 2016.05.14 |
황흑온5 최종 인포! (2) | 2016.01.02 |
[청흑] 안식 신간 인포! (0) | 2016.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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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흑온 써클컷 (0) | 2016.05.14 |
[황흑] Brilliant Life 신간 통판! (0) | 2016.01.07 |